지존파 사건 충격적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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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10. 26.
과거 지존파 하면 무시무시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연속된 살인, 계획된 범행, 시신 훼손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지존파 어떤 사건일까요? 지존파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존파 사건 충격적인 사실 알아보기
조직 지존파 살인사건
지존파 사건은 7명의 지존파 인원들이 5명을 잔혹하게 연속적인 살인한 상황이다 이 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관심을 둘 만큼의 상당히 엽기적인 범죄였다. 지존파로 이름을 결성한 그들은 2년 동안 무려 5명을 엽기적으로 살해했다 그리고 지존파가 만들어진 계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하루하루 힘들게 돈을 벌어가면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억울해서 부자들의 대한 극혐으로 가득 차던 그들은 부자들을 죽이겠다는 신념하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난한 여자를 납치해 강간해서 살해해서 암매장하거나 이유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남성도 죽였다 살해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일반정의 사람들에게 있었다. 1992년 김기환(당시 25세)은 탄광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조 모 씨와 그의 친구들을 포섭해 조직을 결성했지만, 범죄 계획에 살인이 해당하여 있다고 합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직원들은 이를 꺼려서 나가게 되었고 결국 조직은 해체되었다
1993년 1월 김기환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노름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지만, 부자들의 극혐은 사라지지 않았다 첫 조직 실패를 겪은 김기환은 실패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대화술에 관한 책을 읽으며 조직원을 포섭하려고 노력했다. 삼월경, 김기환은 고향 후배 강동 은을 만나 범죄 구상의 일부를 약간씩 알려주면서 느긋하게 설득해 나갔고 결국 강동은 김기환에게 넘어가게 된다
강동은은 교수도 동기였던 문성록, 송봉우(송보은)를 설득하여 조직에 등록을 시키게 된다. 그렇게 김기환, 강동은, 문성록, 송봉우 이 네 사람은 전주로 거처로 잡고 범죄 계획에 논의를 하다가 강동은 이 교도소 동기였던 박병옥을 합류시키게 되었고 문성록은 강문섭을 포섭하고 이주현은 김현양을 포섭했다. 두목 김기환을 포함하여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성록, 백병옥, 송봉우 총 7명의 지존파가 탄생하였다
지존파 아지트
7명 모두 각각 10억 원을 모은다는 신념하에 서울 강남의 현대백화점 고객 명단을 입수해 범행 기반으로 삼았고 1993년 5월부터 11월까지 범죄도 구와 아지트를 마련하기 위해서 대전 둔산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하면서 자본을 모았다 1993년 4월, 7명의 지존파가 만들어진 후 두목 김기환은 지존파에 대한 강령을 내렸다
1, 부자들을 극 한국 혐오 다
2, 각자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3, 배신자는 죽인다
4, 여성은 어머니도 믿지 말라
이와 같은 강령을 내린 두목 김기환은 지존파에 합류한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사건의 시작
1993년 7월, 밤 11시경 살인 연습을 위해서 충남 계룡시 계룡역 부근 버스 정류장 인근에 있다고 합리다가 다리 밑으로 단독적으로 걸어가던 23세의 은행원 최미자 양을 납치하여 차례로 강간하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두목 김기환은 증거 인멸을 하기 위해 조 피고용자들에게 방법까지 알려주며 차례로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하고 최미자 양을 암매장했다. 1993년 8월, 막상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송봉우(송봉근)는 견디다 못해 조직을 나가기로 정신을 먹고 조직의 자금 통장에서 현금 300만 원을 찾아서 도주를 했다.
두 시간 뒤 김기환은 송봉우가 조직을 배신한 것을 눈치채고 체포 작전을 세운 뒤 송봉우의 누이로부터 송봉우가 거주하고 있는 집 주소를 밝혀낸 뒤 송봉우를 방문했다. 김기환은 송봉우에게 용서해주겠다며 조직에 다시 합류할 것을 설득한다. 다시 조직에 합류한 송봉우를 야산으로 데려가 흉기로 폭행해서 기절을 시킨 뒤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암매장을 했다
그 후 이들은 범행 계획에 요구되는 아지트 건축을 위해 돈을 모으는데 전념을 한다. 대전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모든 돈은 김기환 어머니의 집을 살인을 위한 아지트로 고쳐 나가기 개시했다 김기환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더 좋게 짓기 위해서 고쳐 나가는 거라며 사람들이 둘러댔다
1994년 6월, 김기환은 전라남도 영광군 고향 선배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중학생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하여 징역 5년형을 판정받고 교도소에 갇히자 지존파 일당은 강동 은을 부두 복을 삼고 감방에 있는 김기환에게 모든 범죄 명령을 치르며 범행을 시작했다. 1994년 7월, 살인을 위한 지존파 일당의 아지트가 완공되었는데 이 아지트를 아방궁이라며 불렀다. 아지트가 완공되자 하물며 이웃 주민을 초대해 집들이까지 하는 태연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김현양의 중학교 후배인 이주현에게 무기를 사들여 범행 도구들을 완비했으며 현대백화점 신용 판매부 직원이었던 김민경 양에게 백화점에서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산 사람들의 명단을 구매했다. 준비가 다 되었다고 판단한 강동은은 교도소에 갇혀 있는 김기환을 만나 범행에 착수할 것을 허락받는데 범행 목표는 벤츠나 그랜저 등 고급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1994년 9월, 새벽 3시, 지존파 일당은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낚시터 부근에서 차를 주차한 뒤 범행 목표가 나타날 때까지 잠복했다. 몇 시간 뒤 도로에 그랜저가 나타나자 승용차로 가로막은 뒤 가스총과 칼로 이선영 양과 남성 이종원 씨를 위협해 차 밖으로 끌어낸 뒤 테이프와 끈으로 손과 발을 결박하고 눈을 가린 채 포터에 실어 아지트로 납치한다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두 인질의 인적 사항을 조사했는데 지존파 일당이 원하던 부자들이 아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커피숍에서 종업원 생활을 하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이에 지존파 일당은 둘의 매각을 놓고 토론을 한 끝에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다음 날, 지존파 일당은 돌아가며 이선영 양을 성추행하였고 연인이었던 이종원 씨에게는 술을 먹여 취하게 한 뒤 비닐봉지로 질식사시켰다 그런데 이선영 양은 살해하지 않았다 함께 죽이면 수상해 보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는 생각해 이종원 씨만 살해해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1994년 9월 13일, 경기 성남시 남서울공원묘지 인근에 주차된 그랜저 자가용을 발견한 지존파 일당은 성묘를 하고 있던 심정기계(주)사장 조윤오, 박미자 부부를 납치해 아지트로 데려갔다. 조사한 결과 조윤오 씨는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확인되자 1억 원을 주면 풀어주겠다며 합의를 하게 된다
이를 받아들인 소 씨는 회사의 총무부장에게 8천만 원이 든 돈 가방을 건네받아 지존파 일당이 있는 아지트로 와서 돈을 건네준다. 돈 가방을 받은 지존파 일당은 큰돈에 기뻐해하며 소 씨 부부의 매각을 놓고 토론을 했다. 결국 소 씨 부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지존파 일당은 술을 먹인 뒤 이선영 양에게 공기총을 주어 소 씨를 살해했으며 부인 박 양은 칼과 도끼로 살해했다. 그리고 김현양은 박 양 죽은 상태 일부를 도려내어 먹었으며 소 씨 부부의 죽은 상태는 소각했다
소각한 후 냄새를 순환시키기 위해 상황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며 이웃 주민에게 구운 돼지고기를 나눠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존파 일당은 기관총 2자루, 탑차, 자동차를 구매하고 중국(China)으로 가서 전지훈련을 받아 두목 김기환을 체포한 경찰서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하여 MBC를 습격할 청사진을 세운다
이선영 양 탈출 및 지존파 검거
1994년 9월 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만지다가 실수로 폭발이 일어났고 머리의 상처를 받아 이선영과 동행해 종합의료기관으로 갔다가 김현양이 치유를 받는 동안 이선영은 택시를 타고 달아났지만, 택시기사도 지존파와 한패가 아니냐는 공포에 근처 포도밭에 내려 포도밭주인에게 부탁하여 렌터카를 타고 대전으로 간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경찰서에 고발을 했다.
극적으로 탈출한 이선영 양에 의해 지존파가 세상에 알려고 하지에 되었다. 이선영 양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사유가 지존파 일당인 김현양이 이선영 씨에게 연정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지존파 일당은 믿지 못했고 김현양은 이선영 양을 살려내기 위해 살인에 가담을 시켰다가 그럼에도 그녀를 믿지 않았고 김현양과 갈등을 빚으며 언제든지 지존파 일당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는. 사태가 계속되었다
1994년 9월 21일 강동은은 연인 이경숙을 조직에 가담했지만 이틀 만에 체포되었고 6명도 모두 검거되었다. 이경숙을 배제한 김기환, 강동은, 김현양, 강문섭, 문성록, 박병옥은 사형이 판정되었고 이경숙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아 1998년 석방되었다